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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웨스트엔드/뮤지컬, 연극 후기

연극/뮤지컬 1. ★★★★ The Crucible(시련)

목차
- 시련에 대한 기본정보
- 줄거리
- 후기
개인 평점 - ★★★★ 4점
The Crucible (시련)

미국 의 극작가 아서 밀러의 작품.

마녀재판과 전체주의의 무서움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다.

1692년 미국의 매사추세츠주에서 발생한 세일럼 재판을 소재로 쓰여진 작품이다.

1953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이 연극은 미국에서 현재까지도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연극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이후 웨스트엔드에서도 공연을 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현재까지도 꾸준히 리메이크작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 극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이 바로 런던 국립극장에서 2022년에 만든 공연이다. 현대적인 해석과 더불러 올라간 이 공연은 좋은 평을 받아 2023년에는 웨스트엔드로 넘어와 공연을 하게 되었고, 올리비에 시상식에서 최고 리메이크 연극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줄거리

 

한밤중에 몇 명의 소녀들이 모여 옷을 벗고 춤을 추는 광경을 패리스 목사에게 들키는 데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아파하는 아이들과 그걸 악마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이상한 춤을 추었다는 아이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을 추궁하기 시작하고, 그 중심에 있던 소녀 아비게일은 살기 위해 '거짓'으로 악마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악마의 속삭임을 들은 사람들을 알려주는 조건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사건은 점점 커지며 죄없는 사람들까지 소녀들의 말 한마디에 한순간에 죄인이 되어버리기 시작한다. 아비게일은 존 프렉터의 아내(엘리자베스)도 악마와 계약을 했다고 증언한다. 존 프랙터와 간통했던 아비게일의 복수라고  확신을 한 존 프랙터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법정으로 가게 된다. 법정에 자신의 하인인 매리를 증인석으로 올리게 된다.

 

매리는 한 때 소녀들과 함께 였었는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실을 고하고자 법정에 섰다. 일말의 의심이 있으면 바로 잡는게 마땅하지만, 여태까지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재판관은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사실을 보려고 더 노력을 한다. 결국, 소녀들이 매리까지 죽음에 몰아가게 하자 매리는 사실은 존 프랙터가 악마와 계약을 해 자신을 협박했다고 말한다. 

 

매리의 증언으로 존 프랙터는 교수형을 선고받게 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아비게일은 도망을 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재판관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존 프랙터에게 악마를 보았다고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게 된다. 자신의 목숨, 엘리자베스, 3명의 아이들을 생각해 거짓을 고한 그.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존 프랙터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 프랙터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에 아비게일도 도망갔는데 프랙터마저 교수형에 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재판관은 프랙터가 사실 악마를 본게 맞다! 라고 공표를 해서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프랙터는 결국, 자기가 사인한 종이를 찢어버린다.

 

후기

 

마녀사냥을 통해 죽음에 몰리게 된 '소녀들'이 택한 건 또 다른 마녀사냥이었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던 연극이었다. 사람들마다 다양한 메시지를 받았을거라 생각이 들지만 첫 이 연극을 본 나에게는 

 

'살기 위해서 사람들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였다.

 

연극을 보고 난 후에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이 두 명이 있다. 프랙터와 하일. 하일은 줄거리에서 설명을 하지는 않았는데 목사라고 보면 된다. 마을 사람이 아니며 애들을 치료하기위해 마을로 와서 사람들이 정말로 악마와 계약했는지를 본인의 시선으로 판단하고 재판관에게 자기가 본 것들을 보고 하는 역할로 나온다.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그가 점차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로 잡기 위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게 좋았다. 존 프랙터는 말이 필요한가,,, 마지막장면에서 그의 연기는 참,,, 말이 안 나올정도로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두명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음과 같다. 존 프랙터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지만, 허술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다. 십계명도 다 못 외워, 간통도 하고 상황에 따라 거짓말도 하는 그런 사람이다. 반면에 하일은 독실한 크리스찬이면서 누구보닫도 바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단 한 순간도 거짓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사람. 

 

이 두 사람은 '죽음'이라는 상황에 치닫게 된다. 그 속에서 하일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목숨이라도 일단 구하자고 말을 한다. 중요한 건 일단 사는 거라고,, 반면에 존 프랙터는 죽음의 순간이 오자 '거짓'을 고하기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누가 옳은 선택이었을까? 경험이 많이 부족했던 시절의 나는 당연히 전자를 후자를 택했을 것 같다. 진실된 나로 살아가는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많은 경험을 한 지금의 나는 과연 후자를 선택할 수 있을까?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이 떠올랐다. 고문을 받던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진실'을 고하는 것과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람들. 여전히 멍하다. 이런 연극을 볼 수 있기에 런던이라는 곳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이 연극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립공원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밖에 없다.

 

https://www.ntathome.com/videos/the-crucible-full-play

 

The Crucible: Full Play

 

www.ntathome.com

한국어 자막이 없다. 

 

개인적으로 정말 존 프랙터역을 맡으신 분의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거짓을 고하고 사인을 하고 나에게 남은 건 이름 뿐이라고 말하는 그 장면.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연극은 아깝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